요즘 나는 역사스페셜에 빠져있다.
아니 완전 미쳐 있다. 출근하는 길에, 퇴근하는 길에 심지어 자기전에도 보고 있다. 뚜렷하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재학시절 디자인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인거 같다. 역사도 특히 정치에 관련된것을 유독 열심히 그리고 귀담아 듣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 얘기에 머리가 지끈했지. 뭐 역사뿐이랴… 음악, 디자인, 운동빼고 아예 쳐다보지 보지 않았던 것들인데 말이다. 요즘은 정치, 경제도 재밌어졌다. 내가 외계인, 우주역사, 지구역사, UFO, 종교와 특정 비밀조직 등 신비스러운 일들에 유독 호기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봐도 느낌이 없다. 아마도 이러한 성향은 내가 좀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조선1대 태조 이성계부터 고종황제까지 고증들은 나를 흥분시킨다. 왤까… 일반 서민들의
이야기들보다 유독 왕조와 정치가 더 나의 궁금과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아주 쓰잘데기 없는 상상을 한다. '어… 혹시 내가
조선 왕조의 후예?' 아주 터무니없고 웃긴 상상력이다. 내주제에 무슨 ㅋㅋ
나는 원래 장난을 엄청 좋아하는 아이였다.
특히나 말장난이 심했다. 중학교 시절엔 특정 선생님은 아예 내가 있는 교실에 들어오기 싫다고까지 했으니 수업시간에 암적인 존재였다. 고등학교 시절 역시 내가 관심이 없는 공부에는 아예 빠이빠이였다. 내 책과 공책은 그림 그리기 좋은 연습장이었다. 담임선생님의 수업인 수학시간엔 나가서 화분에 물을 주기도 했다.
나는 좀 슬로우스타터 기질이 강하다. 뭘해도 늦게 이해하고 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구구단의 원리를 깨닫는데만 해도 중학생이 되어야 알게되었다. 그러니 뭘 하나를 해도 후에 깨닫고 익힌다. 한마디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이지. 그래서 아마도 그 당시에 공부라는 것을 못한거 같다. 관심분야가 공부가 아니라 다른 것에 관심이 많은 탓이겠지. 궁금하거나 호기심이 가는건 하루종일 그것에만 메달리는 것을 보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것 같다. 그냥 관심없는건 못한다. ㅋㅋ 누구나 그렇겠지만 ㅋㅋ 그래서 잡지식이 많다. 그러나 그 원리나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일취월장한다. 다만 문제는 깨닫으려 하는 순간 관심이 없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성향이다. 이래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ㅋㅋ
대학시절에도 다른 아이들이 자료조사를 해오면 나는 늘 역사를 거슬러 자료를 찾아 오기도 했다. 광고수업에는 일제시대때 신문광고를 찾아오고 시각디자인 수업에는 과거 심볼 디자인에 빠져 교수님이 나의 디자인에 촌스럽다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특히 타이포그래피 공부를 할때는 정말이지 나는 최고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타이포의 원리보다 타이포의 발전사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편집디자인은 5~60년 자료를 찾아 보고 가히 탄식을 지르며 감동 받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당시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과거를 돌아봐야 현재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각 수업마다 교수님마다 수업방식이 다르긴 했지만 초기 디자인에 대해 자세히 상세시 말해주는 교수님은 없었다. 그건 아마도 세분화 되어버린 방식때문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디자인사에서는 내가 궁금했던 사실보다 근대사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시점에서부터의 얘기가 대부분이었고 금새 한학기는 지나가 버렸다. 나는 더 이전에 디자인 역사에 궁금증을 가지고 더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내가 실무에서 하는 디자인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지만 그때의 공부로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확실히 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있어 역사라는 의미는 내가 지금 이자리에 있는 이유가 되어가는 듯 하다.
미래는 내가 정할 수 있지만 지나온 과거는 내가 이제 만들 수 없다. 이 사실이 내가 디자인 하는 이유가 될 줄은 상상을 못했다.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것,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근거가 된다. 조선시대에 농사를 하는 방법의 백과사전이 있다. 그것이 현재에도 계승이 되고 있다. 디자인 역시 도구만 바뀌었을뿐 디자인의 의미와 원리를 고전 그대로 전승이 되고 있다. 내가 프로그램을 배울때 책으로 배우기 보다 서양인들의 사고와 그것이 가지는 원리를 파악했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책으로 암기를 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프로그램을 열었을때 충분히 다룰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그것은 암기를 통해 습득을 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기능만 익혔다는 것이다. 근데 뭐 한번도 기한을 넘긴적은 없다. 이렇게 하면 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되겠지?하는 것이 아마도 속도를 느리게 하는 것 같다.
또 옆으로 샌다.
아무튼 그렇게 역사를 공부를 하다보면 문명 초기의 예술작품이 시대와 장소를 거쳐 발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을 현재와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발전한듯 하나 자세히 보면 발전보다는 정체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에 방어만 구축했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폐쇠성을 띄게 되는데, 문명과 예술이 발달한 나라의 특징은 침략국이 더 다양한 문화와 예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역사는 전통만을 고수하던 사회였고 그것의 DNA가 여전히 계승되었다.
얼마전까지 우리나라가 폐쇠성을 가진건 조선 사대부들때문이라고만 생각했던 틑을 깨게 만들었다. 예를들어, 신라의 조상은 흉노였다는 역사적 고증은 그들이 가지고 온 그들의 문화가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라가 망하거나 나라에서 쫓겨와 그 당시 그 장소의 한정된 자원으로 기존의 문화를 계승하고 유지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것은 발전이라기 보다 변형에 가깝다. 우리가 디자인적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시안이 아니라 바레이션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같은 것을 여러번 변형하는 것이다. 그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의 예술은 창의적이지 못하다. 그건 지금 현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치와 사회, 문화 전반이 창의적이기 보다 우리만의 것으로 바레이션 쳐진것이다. 물론 창의적인 것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철저히 배척되고 있다. 우리가 바다 건너 새로운 항로를 발견한 경험도 없고 그 시도조차 못했다. 양반이라는 사람들은 그저 탁상공론만을 행했다. 오히려 민간, 특히 바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뜻밖의 기회로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바닷가 사람들은 생각이 진취적이다.
이 시점에서 반문을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예술적 작품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것 또한 창의적이기 보다 발전이 아니었던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맞다. 우리는 지금 발전만 하고 있다. 그래서 유명한 사람이 이런말을 했다. '새로움은 없다.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을 발견할 뿐이다.' 참 이말은 엄청난 설득력 있다. 창조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더없이 멋진 말이고 진리겠다. ㅋㅋ 뭐 어찌됬던 저말은 자연에서 부터 시작된다라는 정도로만 나는 생각하려 한다. 오히려 이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모든 원리와 진리를 얻게 되었다. 인간이 손을 사용하여 발전 시킨건 예술분야였다. 그들의 생각과 사고를, 또한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예술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문명은 사라졌지만 계승되었다.
나는 확실해졌다. 내가 가려는 길은 나의 미래를 위한 길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게 된 근원을 알고 싶어 떠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는 거슬러 간다. 그것이 내가 공부를 하려는 뚜렷한 이유이고 목적이다. 새로움보다 과거의 흔적을 찾는 일이 더 나를 설레게 한다.